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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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동네 어느 사립 초등학교에서 갑작스레 교사들의 장애인 인권교육을 요청했다. 사무실에서 무척 가까운 그 학교에 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들머리에서 꽤 익숙한 풍경이 열렸다. 각종 고급 자동차와 외제차들이 학교를 오가고 통학 버스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40년 전 부산의 부잣집만 다닌다던 유명한 사립학교였던 동래국민학교에 내가 매일 등교할 때 날마다 목격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기본적인 경사로조차 없는 것도 똑같아서 소름끼쳤다. 동래초는 80년대에 통학 버스가 있고 컴퓨터와 영어 수업을 따로 교육하는 학교였다. 버스나 택시는 목발을 보면 부정 탄다며 쌩쌩 지나치기 일쑤였지만 같은 반 친구들과 부모들은 그 비싼 그랜저, 로얄살롱 슈퍼, 콩코드 자동차를 자주 태워주었다. 

이미 그 때, 입학 문의 전화에 학생을 미리 고르지 않는다면서 무조건 데려 오라는 교사가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제비뽑기 실패에도 다른 학교에 마음껏 갈 수 있지만 너는 이미 열군데 넘는 국공립학교에서 차별 받았으니 나를 선발키 위해 비장애인 학생 여러 명을 울게 만든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다른 학부모님들이 장애인과 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없다고 했을 때, 나를 거부하면 모두 담임을 맡지 않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던 1학년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경주 수학여행 때 놀림 받을까봐 홀로 나를 업고 토함산을 올랐던 교감 선생님의 땀에 젖은 굽은 등을 잊을 수 없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반대가 심해서 서울에 비해 장애인 복지관도 한 곳도 지을 수 없는 곳이 부산의 사립학교였다. 

사실, 2022년 인권강의를 요청했던 같은 마을에 이 사립초는 교장과 교사에 장애인 학생에 대한 당사자의 동의 없는 장애의 아웃팅과 개인정보 유출, 혐오 차별로 인해 당사자는 전학을 가고 정서적 학대로 수사 의뢰까지 받는 상황이었다. 교장, 교감과 일부 교사의 반교육적 차별 행위도 차별 행위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기존 피상적인 장애인 인권교육의 폐해와 교육자의 직업적인 인권 감수성, 장애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40년 전 나의 초등학교 선생들도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장애를 공개 설명하고는 했다. 공식적으로 나의 동의를 얻지는 않으셨지만 선생님들은 늘 학교는 장애인 학생이 필요하고 내 장애는 항상 유니크하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들이 내 장애를 언급하면 할수록 내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다. 

교육자가 장애의 인권적인 절차와 해석을 고민하지 않으면, 장애인이기 이전에 우리 반 학생이고 우리 학교 학생이고 우리 지역 주민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장애인 인권교육은 오히려 차별과 혐오하는 방법을 알려 줄 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몇몇 가해자들보다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이런 차별과 혐오에 공동으로 모두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언제든지 이 학교 구성원들은 홀로 고립되어 차별 받을 위험에 놓여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학부모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안전한 학교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인 장애인 학생이 반강제적으로 전학가야 하는 학교라면 비장애인 학생 그 누구라도 학교를 다니다가 장애를 가지면 쫓겨나고 잠시라도 장애를 얻으면 차별 받을 수밖에 없는 학교가 된다. 모두에게 위험한 학교가 된다. 

과거에 사립은 공립보다 더 공공적이었고 인권적이었고 혁신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가까운 미래에는 장애인과 어릴 때부터 함께 공부하고 교육받지 못하면 그대들이 바라는 사회를 이끄는 학생은 절대로 키워낼 수 없고 학교 법인으로서의 전문성과 권위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인권 강의를 꼭 들어야 할 교장 교감, 교사들도 함께 인권강의를 듣게 하는 학교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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