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간을 맞아 은평에서는 ‘은평봄봄축제’가 열렸는데 행사장 마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서부장복)에서 일하는 박영민 조합원의 활약이 눈에 띤다. 박영민 조합원은 서부장복 지역팀에서 소속돼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 등 지역단체들과의 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영민 조합원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사회복지노동자의 길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지탱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고민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반갑습니다. 처음 은평시민신문과의 인연이 궁금해요.

고향인 부산을 떠나 은평에 살게 되면서 우연히 은시문을 보고 ‘이런 지역신문이!’라는 생각에 구독 신청을 했지요.

어떻게 장애인복지를 위한 일을 하게 됐나요?

“장애인 특수교육을 전공했지만 학교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장애인의 일자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연히 서부장복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처음에는 떨어졌다가, 후에 다시 연락이 와 ‘직업재활' 업무를 하기로 하고 입사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부장복에서 처음 맡은 일은 장애인 취업 연계 업무였어요.

장애인 노동현장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발달장애인은 단순 반복 작업 위주의 생산직, 즉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와 같은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하게 돼요. 고용주는 저임금으로 비장애인이 수준의 고효율 업무능력을 바라기도 해요. 시장논리로만 장애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또 가장 힘들었던 것은 훌륭한 선배나 동료의 이직을 지켜볼 때였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사회복지 현장의 노동 인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공과 민간 중간에서 사회구조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애매한 부분들은 사회복지사들의 역량으로 전가되는 현실에서 많이 지치죠. 게다가 사업에 비해 자본·인력은 부족하고, 초과근무는 기록되지 않죠. 한국 사회 복지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이에요.

그럼에도 어디선가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셨겠죠?

직업팀에서 있을 때 생활고에 시달리는 장애인이 취업에 성공했을 때였어요. 제가 취업한 것과 같이 기뻤죠. 취업 후 그들이 담당할 업무를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작업현장에서 함께 할 때도 보람찼습니다. 힘든 순간에도 사회복지사의 길을 떠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지탱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세요.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대한민국의 속도는 너무 빨라요. 업무 현장에서 비장애인들만큼의 업무 성과를 요구하죠. 여전히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경쟁하여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 속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말은 무의미해요. 당장 우리 서부장복조차 60여 명의 직원 중 장애인은 단 1명입니다. 복지관만의 탓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느림’을 감수하고 함께 가겠다는 마음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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