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구산동은 국수집 가게가 많다. 꽈배기 집도 많다. 오래된 노포도 많은 만큼 옛날 건물도 많다. 어떤 곳은 휠체어는커녕 목발로도 접근이 어렵고 계단은 높기만 하다. 바퀴가 달린 것들이 동네를 구르는 것은 고달프다. 그래서 때로 반가운 것은 포장마차 호떡과 드럼통 군고구마 같은 길거리 음식이다. 바퀴가 구르다가 그냥 접근하기 쉽고 바투 다가서면 벌써 주문 받을 채비를 하시거나 앞에 의자를 치우시니 출입거부를 당할 일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반가운 것이 특히 큰 마트 옆에서 자리 잡고 계신 할머니 호떡 포장마차이다.호떡은 나
우리 마을 제일 높은 언덕에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서울시립 은혜로운 집이 있다. 기초생활수급권리자가 우선권이 있는 정신 장애인 당사자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이곳에 입소하면 그 수급권이 개인통장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 시설 수급으로 바뀌고 주민등록상 주소도 여기로 전입 신고가 된다. 정신요양기관으로서 당사자에게 주거 생활 시설이 된다. 그래서 입·퇴소가 언제든 자유롭다고 홍보하고 안내해 준다. 200명 가까운 당사자가 계시는 이 곳 앞에는 큰 떡갈 나무 한그루가 자리 잡아 고즈넉한 정취마저 더 한다.그런데 은평구 마을 사람들이 이 곳에
구산역에서 서오릉 오르는 큰 길은 버스 종점 두 곳이라 늘 번잡하다. 사람 가는 길 역시 구르는 바퀴 위에 있으면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다. 울퉁불퉁한 길을 온몸으로 느낀다. 퇴근길에 반찬가게나 마트 앞은 많은 물건들이 인도로 쏟아지고 사람들도 인산인해인지라 목발이나 휠체어로 장보기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바퀴의 진입이 아예 가로막히면 피곤에 절은 직장인도, 가게 밖에서 떨이 판매를 외치던 점원분도 얼른 달려와 연신 사과하며 냉큼 물건을 치워 길을 터준다.때로는 사람들에게 치여 찻길로 밀려날 찰나, 마주 오던 인파와
이제 사람들이 3년 전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돌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그동안 못한 것을 한 번에 해소하려는 마냥 각종 축제 행사에 엄청난 인파가 빅뱅 한다. 심지어 서울역에 쉬이 탈 수 있었던 승강기도 유아차와 반려견차들이 길게 늘어져 있어 정작 목발을 짚는 자는 기차를 놓칠세라 계단을 내달린다. 코로나 때문에 무조건 고위험군라고 겨우 감옥의 운동 시간만큼만 외출을 허용 받던 장애인들의 일상은 과연 그러할까? UN장애인인권권리협약 제정 당시 최초로 함께 만들던 여성가족부가 풍전등화여서 아무도 관심 없던 장애인-
가끔 사람들이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단지’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 소개할 때 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불편함이 있다. 과거 ‘장애우’란 말처럼 예우한다고 일컫던 것처럼 장애를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타인이 지칭하는 것은 객관적인 표현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현실의 차별과 혐오를 은폐하는 미세차별, 먼지차별의 표현이다.누구라도 내 장애를 발견하고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동의 없이 내 장애를 지칭하는 것은 명백한 개인 정보 유출이다. 내 신체 정보가 필요할 때는 장애에 대하여 지원이 필요할 때뿐이다. 날 때부터 뇌변병